사진가 이창수 "흐르고 떠돌고 노니는 ‘이 그 빛’ 잡았죠” 학고재갤러리서 10년만에 개인전

2018-07-23 11:03:52 by 한수빈기자 기사 인쇄하기

사진) 학고재갤러리에서 이창수 작가가 섬진강을 담아온 '이 그 빛' 개인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울=IBS중앙방송】한수빈기자 = 어느 맑은 봄 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은 보지도 않은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 뿐이다"

 영화 '달콤한 인생' 명대사 같은 사진전이 열렸다.  20일 서울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펼친 사진작가 이창수(58)개인전 '이 그 빛' 전이다.

 섬진강 수면의 빛을 촬영한 33점의 사진과 1점의 영상을 선보인다. 섬진강을 찍었다고 하는데 물의 흔적은 찾아볼수 없다. 물을 찍었다고 하는데 물이 안보이는 사진이다. 마치 '빛 잔치'하는 우주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번 전시평을 쓴 김종길 미술평론가도  "그가 물낯의 빛 무리를 비추며 마음 눈으로 새긴 빛살의 풍경들"이라면서 "그런데 여기서 한 질문이 연기처럼 치솟아 맴돈다. 그 빛살 풍경의 실재는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흐르는 물일까? 물에 잠겼다가 솟구치는 빛 그림자일까? 비추인 것의 본성은 무엇일까?"라고 썼다.

 '이 그 빛'. 딱딱하게 떨어지는 전시 타이틀이 힌트다.

 20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간단 명료했다. "방금 있다가 지금 없는 빛의 시간, 그저 그냥 '이 그 빛'"이라고 했다.

 "'이 그 빛'은 둘이 아니다는 뜻이다. 사진 매체로 잡은게(찍은게) 섬진강인데 강이 아니고, 물이다. 그런데 물이 아니고 빛이다. 그러니 빛과 물은 둘이 아니다."

 선승처럼 이야기하는 그는 "더 더 본질로 들어가는 흔적들"이라고 설명했다. 

 "100% 물인데, 물이라는 흔적을 없애고 빛 자체로만 온전하게 드러날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이지? 하고 나온 작품"이라는 것.

 그의 말을 따지고 작품을 보면 "물의 결에서 빛이 넘실대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결국 "물을 떠나지 않은 빛, 빛을 떠나지 않은 물, 흐르고 떠돌고 노니는 빛"을 사진으로 담아 온 것이다.

  작가는 "아주 가까이서 세밀한 흔적들을 찍어내니 오히려 넓게 바라본 것보다 훨씬 더 넓고 깊어 보는 사람들 대부분 '우주'를 이야기한다"면서 "색감과 느낌이 미시적으로 봤으때, 더 넓은 공간이 느껴지는게 이 사진의 키워드"라고 했다.

  자연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거나 극도로 미시적인 세계에 몰입하게 된 배경은 이전 히말라야 14좌를 등반하면서 큰 에너지를 느낀 경험 때문이다. "그 이후 물에서 들여다보니 그 감각이 있었고 이게 뭐지? 뭐지? 하고 점점 들여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다."

 시선의 방향이 극적으로 변화했지만 작업세계를 관통하는 주제는 한결같다. 대상의 껍데기 내면에 꿈틀대는 본질에 관한 관심이다.

 "물이 빛 무리의 용오름으로 휘몰아가는 우주 은하의 한 세계가 찰나로 엮여서 ‘사진’(寫眞)이 되는 그 순간들"을 잡아온 그는 "우리들이 생각하는 틀, 프레임을 없애는 것, 결국 사유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 이 사진의 메시지"라고 말했다.

  이창수의 작업은 찰나의 순간을 찾아내는 일이다. 순간적으로 흩어지는 미세한 물빛의 흐름을 포착해 다채로운 빛무리의 이미지를 얻어냈다. 빛의 무리가 움직이며 도시의 야경이, 빛의 폭포가, 불타는 유성과 찬란한 은하수가 되어 화면을 수놓는다. 미시적 세계에 깊이 파고들어 대상 내면의 드넓은 우주를 건져낸 결과물이다.

  '빛의 무리'는 "100% 다큐멘터리"라고 했다. 작가는 "후보정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다"면서 "블루, 옐로우, 화이트 색감은 찍은 시간대에 따라서 나타난 색으로 물의 질감 물질성을 느낄수 없었다"고 했다. 

   학고재갤러리가 이번 전시 대표작으로 내세운 '방금 있다가 지금 없네' 작품은 물감이 흐르는 회화처럼 보인다.

 실제 상황은 작가가 계곡에서 놀다가 찍은 사진이다. "물결들이 흘러내리는 질감, 하나하나를 드러낸 것을 찍은 것"이라는 작가는 "빛이 흘러내리는 느낌을 보며 메트릭스가 연상됐다"고 했다. 

 그는 "다시 찍으라면 못 찍는다. 그날의 빛의 흐름, 각도 물양에 따라 나온 것이다. 프레임이 들어갈수 없다"며 인위적인 기법이 전혀 가미되지 않은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작품 제목은 모두 작가가 지었다. '방금 있다가 지금 없네'처럼 그는 "머무르지 않는 매 순간, 과거 현재가 없는 지금이 중요하다"며 "그런 사유할꺼리를 사진에 넣은 것"이라고 했다. 

 상형문자 같은 사진도 마찬가지다. "빛과 마주한 것이다. 반사된 현상을 찍은게 아니라 빛 그자체를 찍은 것. 햇빛속으로 들어간 것"으로 "빛을 드러내려면 그 주변을 블랙이 된다. 물질성이 없어진 빛을 드러낸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사진기자 출신이다. 18년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는 시기였다. 사진기자재도 바뀌고 세대가 바뀌는게 느껴졌다. "과연 내 삶의 수를 놓을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다, 아날로그적인 삶속에서 나를 찾아야겠다"며 2000년 지리산 자락 악양으로 거처를 옮겼다.

 서울 태생 '서울 남자'였던 그는 "인생의 절반을 기자로서 열심히 살았다면 나머지 절반의 인생은 자연과 벗하여 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당시 "살러 간 것이 아니라 ‘죽으러’ 갔다"고 말할 정도로 모든 것을 버리고 내려온 그는 녹차 농사를 지으며 사진 작업에 몰두했다.

 죽고자 하면 산다고 했던가. 아날로그적 삶을 찾자, 디지털이 필요한게 아니라 커넥션이 필요했다. 기자출신답게 홈페이지를 만들어 글을 썼고, 기고가 되면서 책도 출간했다.

 2008년부터 사진작가로 학고재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지난 2014년 예술의전당에서 원경의 히말라야 산맥을 담아온 '영원한 찰나, 히말라야 14좌 사진전'으로 주목받았다.

 "마음눈을 열어서 그가 깨달은 한순간의 진리는 숭엄한 대자연의 실재가 히말라야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 생각을 일으키니 모든 찰나의 순간들이 숭엄하였다. 삶의 초월성은 그렇게 한 생각을 일으키는 순간들로부터 비롯되었다."

 "여전히 사진 찍으러가면 너무 즐겁고 신난다"는 그는 "사진은 마이너스, 빼기다"며 "이번 사진전도 버릴 만큼 버리고 남은 것이다. 물 사진은 더 안한다"고 했다. 전시는 8월12일까지.

 press0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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